호두나무 책장/감상

『FINAL FANTASY XIV: DAWNTRAIL』을 하다

2024. 11. 19. 01:55

(주의) 『FINAL FANTASY XIV: DAWNTRAIL(황금의 유산)』  및 패치 7.1까지의 중요 내용을 포함합니다.

지난 6월 말 출시된 『FINAL FANTASY XIV』 최신 확장팩 「황금의 유산」(패치 7.0)을 플레이했다. 원래는 감상을 혼자 적어 두고 말 생각이었는데, 후속 패치 내용까지 보고 나니 토막나 있던 생각들을 그래도 하나로 정리해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아 글쓰기 창을 열어 보았다.

정리한다고는 했지만 무슨 리뷰를 쓰는 것도 아니요 하나의 테마로 장문을 써내려가지는 않을 것 같다. 우선 혼자 적어뒀던 생각 토막들을 모으면서 살을 붙여볼까 한다.

레벨 디자인

일단 스포일러를 덜 해도 되는 이야기부터.

확장팩 전반적인 레벨 디자인은 지금까지의 것과 거의 동일하다 (필드 6개, 던전 5개+최종 1개, 보스전 2개+최종 1개). 「창천의 이슈가르드」(패치 3.0) 때부터니까 확장팩 다섯 개째 거의 동일한 구조이고, 이용자 규모가 늘어나고 스토리의 폭도 양도 늘어나면서 이 구조에 살이 덧붙여진 형태가 지금의 모양새가 되겠다. 필드 크기를 키우면서 다양한 요소를 한 맵 안에 배치하고, 레벨 구간에 따라 필드 나눠 쓰고, 극초반에 스토리상 분기를 제공해서 한 곳에 이용자가 몰리지 않도록 분산하고, 던전을 일종의 필드처럼 활용해서 맵과 맵 사이의 빈 곳을 메우는 등등. 이번에도 비슷하다.

다만 한정된 필드 수 안에서 과거 이상의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필드 하나하나가 가지는 역할이 점점 커지다 보니, 한 필드 안에서는 여러 요소들이 잘 묶일 수 있지만 여러 필드가 하나의 패키지로 묶였을 때의 유기감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창천의 이슈가르드」는 애초에 이야기가 일어나는 지역이 그리 넓지 않았고, 「칠흑의 반역자」(패치 5.0)는 '빛의 범람'이라는 설정과 비주얼로 서로 다른 필드 사이의 통일감을 끌어낸 반면, 이번을 포함해 테마 또는 사건이 발생하는 지역이 여러 곳인 경우에는 이런 단점이 좀 더 눈에 띄는 듯하다. 「효월의 종언」(패치 6.0) 때도 사실 비슷했는데, 이건 달에 가고 과거로 가고 해도 서사상 클라이맥스라 다소 그러려니 한 것이고.

그 외에도 초반 분기에서 각 분기의 분량이 꽤 있다 보니 첫 던전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여기에 대한 피드백도 꽤 있었다는 모양. 게임으로서의 볼륨이 적지는 않은데 전체적으로 컷신이 무지막지하게 많아져서 상대적으로 비주얼 노벨처럼 느껴지는 지점도 좀 있었다. 이동하고 컷신 보고 이동하고 컷신 보고...

다 써놓고 보니 뭔 안 좋은 소리만 줄줄 써놨는데, 레벨 디자인이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는 장점은 분명히 있다. 한 번 내고 끝인 게임도 아니고 아쉬웠던 부분은 이어지는 확장팩들에서 개선해가면 되는 것이고.

 

게임플레이 (전투 위주)

어려워졌다. 전투 시스템 자체는 그대로고, 조작감도 대부분 거의 그대로. 그런데 사람들이 기믹 쉽다고 옛날 기믹 우려먹는다고 하도 그랬더니 개발진이 아주 작정을 한 모양. 레벨링 구간 던전도 제법 까다롭고, 만렙 이후 가는 던전과 레이드들은 초행길엔 무조건 한번씩 죽다 살아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패치 7.1에서 추가된 24인 레이드도 처음엔 전멸을 대체 몇 번을 했는지. 그래도 나는 이 정도는 괜찮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나는 좋다. 만렙 즈음까지 게임을 했으면 이 정도 난이도는 (약간은 도전적이겠지만) 해봄직하지 않을까? 싶다.

초행 때 '이걸 매주 돌아야 하는 건가...' 소리가 절로 나왔던 엔드컨텐츠 레이드 '아르카디아: 라이트헤비급'. 이걸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고 있으니 적응이란 참 대단하구나 싶기도 하다.

 

스토리

이게... 전반이랑 후반이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 전반은 각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고, 무엇을 중요시하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느낌. '이문화 체험'이라고 쓰면 관광 온 느낌이라서 그다지 내키지 않지만... 뭐 비슷한 느낌. 행운을 부른다고 여겨지는 마을의 의식을 퀘스트로서 부탁받는다거나... 체험은 체험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외부인으로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잠깐이나마 함께했다는 감각이 강하다. 나는 이 부분 되게 좋았는데, 타이밍상 첫 던전 전에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가 이어지다보니 '게임'을 하러 온 사람들은 아무래도 좀 읭 하게 될 수도 있었겠다 싶다.

필드 '울코 파차' 낮 테마곡. 평화로운 동시에 무언가 설레이는... 이 테마 베이스로 만들어진 '바리갈만다' 토벌전 테마곡도 드라마틱해서 좋아한다.

95레벨 던전 'The Skydeep Cenote' ('하늘못 세노테' 정도로 의역을 해볼까...)에서 전반이 일단락된다.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왕위 계승'이 스토리의 큰 테마 중 하나였던 만큼 가족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다뤄지는데, 이 전후 마무크 마을 파트에서도 '쌍두'를 둘러싼 일그러진 가족 관계가 좀 보인다. 한편 놀랄 만한 것들을 골목 뒤에 숨겨놓는 건 「칠흑」 아모로트 파트 이후로 자주 써먹는 것 같다. 난 좋았다. 여기서 입구만 보여주고 스토리 핸들 확 틀지만 않았으면...

샬로니 황야 파트가 전후반 사이에 떠가지고 참 애매한데, 에렌빌의 가족 방문이라는 명분은 있고, 결과적으로 이후 필드에 들어가기 위해서 이 지역 사람들의 협력이 중요했다는 점에서 필요는 있었겠으나... 확장팩 이름에까지 내건 황금향을 입구까지만 보여주고 난 뒤에 보여줄 스토리로는 너무 자질구레하지 않았나 싶다. 이 필드 부분의 이야기적 기승전결(사람들을 알아가고 → 신뢰를 얻고 → 어려움을 설득해내고 → 문제를 해결)은 꽤 괜찮았다고 생각하긴 함. 게임 요소라도 많았으면 괜찮았을텐데 컷신이 또 하도 많아가지고.

후반부터는 이제 거울세계 들어왔다고 이야기가 갑자기 하드 SF로 장르를 바꿔가지고 날뛰기 시작한다. 번개를 다른 에너지로 바꿔서 사용해? 사람 목숨이 여러 개가 있어? 그런데 완전히 죽으면 다른 사람들한테서 기억이 지워져? 앞 확장팩들에서 거울세계 설정을 잘 만들어놓으니 이건 거의 치트키다. 무슨 이상한 설정을 갖다놔도 '아 그거 다른 세계에요 ㅇㅇ' 하고 격리해버리면 거기까지로 끝난다. 다양한 거울세계들을 더 많이 발견해가는 스토리가 '파판14'의 두 번째 큰 서사가 되지 않을까 싶긴 한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뭘 해도 괜찮은 판이 깔린 듯도 싶다.

이게 기술적으로는 그렇게 엮을 수는 있는데, 이번 이야기에서는... 그 세계가 원래 세계에 자리잡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었다고 느낌. '솔루션 나인' 도시가 예쁘기는 진짜 기깔나게 예쁘지만, 자기 고향이 남의 세계에 잡아먹혀 가족도 잃은 에렌빌을 두고 도시 예쁘다고 희희낙락할 마음은 아직까지 가지 않음.

사실 에렌빌이 없어도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아직까지도 저 도시는 주인공에게 있어서 적진에 가깝다. 이 사태를 만든 인물들은 보스로서 해치웠지만 사라지지도 않았고, 문제도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고, 패치 7.0 마지막 던전 내용으로 보건대 보스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의지의 집합임. 말이 보스이고 나라의 왕이지 사실상 지지자들이 자기만을 생각해주는 깡통 로봇 하나 만들고 거기다 권력을 준 것과 별 다르지 않음. (선거가 생각나지만 못 본 척 하기로 하자) 이런 판이니 평범한 사람들과 우두머리를 갈라서 보스만 치면 된다고 생각하기에도 문제가 좀 있고. 패치 7.3에서 보스를 아마 토벌하긴 하겠지만 그런다고 이 난리판이 해결이 될 것인가?는 조금 지켜봐야 할 듯. 일단 패치 7.1에서 문제가 여전함에 대한 언급이 뚜렷하니 희망적이긴 하다. 평범한 사람들과 관련된 문제들을 전부 다 레귤레이터 탓으로 돌려버릴 가능성 없지 않지만... 미친 짓의 실행 수단을 뺏어버리는 것도 뭐 방법은 방법일테니.

(패치 7.1 컷신 중) 노ㅇ담도 자ㄹ하시네요! 분며ㅇ히 장례는 치루어ㅆ지만, 그건 스ㅂ격으로 목수ㅁ을 이ㅀ은 시민들을 위한 거ㅅ!

조라쟈...는 패치 7.1 내용까지 합해서 생각이 많으니 일단 건너뛰고. 리빙 메모리는 확장팩에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 중 하나. 황금향으로 가는 문을 넘어서 있었던 게(=저쪽 거울세계에 남아있던 게) 필드 하나어치, 헤리티지 파운드를 포함하면 필드 두 개어치밖에 안 된다는 소린데. 「칠흑」 때는 확장팩 하나를 통째로 써서 세계 하나를 공들여 그려놓고, 아무리 재해로 망해가기로서니 확장팩 끄트머리에 숟가락만 얹는 걸로 소비해버릴 일인지. 컷신 많다많다 이야기했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원초세계의 투랄 대륙과 저쪽 거울세계 모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소비된 느낌이 강하다.

이야기 면으로 봤을 때는... 쿠루루 에피소드는 그래도 출생의 비밀을 깔끔하게 밝혀준 것 같다. 알로알로 섬(지난 확장팩 던전)을 미리 좀 해뒀으면 좀 더 재밌게 읽었을 듯. 에렌빌-카프키와 쪽은... 카프키와는 하고 싶은 것 다 했을 수도 있으나(아니 근데 살아 있는 상태를 재현해둔 것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는지... 현대에 비추어서 AI로 죽은 사람의 인격을 재현해둔 느낌이라고 직감적으로 받아들이긴 했는데 이게 잘 읽은 건지 게임한지 오래 되어서 직감만 남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카프키와가 영구인으로서라도 '살아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똑같음) 에렌빌의 감정이 해소가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네. 일도 그만두고 무슨 마음을 먹은 것 같기는 한데 잘 먹은 건지 잘못 먹은 건지.

황금향이라기보다 증권가 느낌(...?)

카프키와 얘기를 하니까 생각났는데, 패치 7.1 신 던전 마지막 보스 디자인에서 카프키와가 느껴진다고 사람들이 난리던데. 나는 저 안에 테샤쟈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걸 굳이 언급하지 않는 건 주변에 구루쟈가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둘 중 어느 쪽이든 (또는 둘 다든...?) 구체적인 언급이 나오는 날에는 잠깐 기절했다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구루쟈 언급이 나왔으니 대망의 조라쟈 이야기를 해 보자. 패치 7.0 보고 사람들이 조라쟈가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피드백이 되게 많았다고들 하는데, 나는 7.0 수준의 설명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함. 저 정도로 정보를 제시했을 때 조라쟈의 감정선을 바로 공감하는 사람이 있고, 이 시점에서 이해하지 못했으면 설명을 해주더라도 머리로 어떻게든 이해할 수는 있더라도 공감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이건 공감 능력이 좋고 나쁘고라기보다 그걸 받아들이는 개인의 배경이나 성향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음. 애초에 공감을 못 받는 캐릭터로서 만들어진 것임. 패치 7.1에서 조라쟈가 '자식에게 부모란 무엇인지, 부모에게 자식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장면은 그런 상황 와중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말이자 플레이어에게 줄 수 있는 힌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주변에서 뭘 도와줘야 하는지 그는 말할 수 없었을 것임.

굳이굳이 설명 같은 걸 좀 해보자면, 조라쟈가 자신이 받기를 원한 대로 구루쟈에게 해준 거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보면 방임을 넘어 유기에 가깝겠지만... 부모가 누구든, 무엇을 하든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자기로서, 자기가 하고자 했던 것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조라쟈 본인이 그렇게 살고 싶었고(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불만에 대한 반작용이 컸거나),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보호자와 피보호자 모두가 만족하는 방법은 애초에 몰랐기 때문에. 자신이 모든 욕받이가 되고, 마지막에 권력만을 넘겨주는. 통제적 보호자의 반대편 극단에 서 있는 예라고 할지. 이쪽도 저쪽도 뭐 일종의 사랑의 형태라고는 생각함. 수요가 별로 없는 공급이라서 그렇지.

이 즈음 해서 「칠흑」의 토벌전 시리즈('웰리트 전역' 이야기)의 시나리오 라이터가 이번 확장팩 메인 시나리오에 참여했다는 언급을 떠올리면 '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부모(특히 부자) 관계'라는 점에서 테마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 있다. 마무크에서의 바쿠쟈쟈의 과거가 그랬고, 구루쟈쟈-조라쟈-구루쟈 사이에서도 그러함. 그런 점에서 라이터의 개인적인 배경이 일부 반영된 것이 아닐까 하고 7.0 메인 스토리를 보면서 추측했었는데, 7.1 스토리를 보면서는 (혹시 같은 라이터이고, 추측이 맞다면) 이런 관계에 대해 어떤 자기 나름의 답을 내린 것 같았다. 조라쟈 관련해서 생각나는 건 대충 이 정도.

(+) 생각해보니 구루쟈에 대한 얘기도 조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덧붙인다. 관계가 이렇게 되다 보니 구루쟈가 처음에 마음의 문을 닫은 상태로 우리를 만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생각하고, 지나칠 정도로 애늙은이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릴 수 있는 기회를 앞으로 점점 얻기 어려워질 것 같다는 점에서 내심 좀 안타깝긴 하다. 근데 그에게는 그냥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 것이고, 안타까운 건 그냥 내 감정인 것이고. 설사 실제로 구루쟈가 내 앞에 있더라도 그런 감정을 그에게 전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중에 다시 어릴 수 있도록, 그래도 괜찮도록 가만히 있어주는 게 맞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았던 자잘한 부분들 정리. 육체가 죽었을 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잊혀졌을 때 진짜 죽는 것이라고, 그래서 자신들은 육체가 죽기 전에 잊혀지지 않기 위해 미리 묘를 만든다던 요카후이족의 말이 솔루션 나인에서 다시 떠오르는 것 너무 좋았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 중 어느 쪽이 행복할지, 죽은 사람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죽은 사람을 기억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는지 하는, 저런 설정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궁금해할 만한 인물만이 할 수 있는 질문들을 빠뜨리지 않고 던져주는 것들도 너무 좋았다. 7.0 메인 스토리의 아쉬웠던 틈들을 많이 채워주는 7.1이었고, 7.3까지의 길도 보이기 시작했으니, 이후 스토리도 기대된다.

덧. 엔딩 크레딧 곡 「Smile」은 약간 마음에 안 들긴 한다. '눈새야 웃어라^^' 같은 소리를 뮤지컬로 듣는 느낌이었음. 레이드 음악은 다 좋더니만 여기도 밝은 음악 만들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