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책장/감상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증언들』을 읽고

2022. 9. 24. 22:34

증언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황금가지, 2020년 1월

 

미지의 독자여. 지금 당신이 읽고 있다면 이 원고는 적어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미망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아마도 내게는 영영 독자가 없을지 모른다. 아마도 나는 벽에 대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이상의 의미로.
- 본문 중에서

 

좋았던 소설의 후속작은 대개 그다지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특히 오랜 세월을 거친 뒤에 나오는 후속작은 더더욱 그렇다. 전작에서 의도적으로 남겨뒀던 공백을 굳이 채워서 맛을 떨어뜨리거나, 아예 다른 곳을 향하거나, 시대에 따라오지 못하거나. 하지만 여기에 예외라 부를 수 있는 작품이 있다. 『시녀 이야기』(1985)의 30여년 만의 후속작, 『증언들』이다.

어느날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제정일치 전체주의 국가 '길리어드'가 세워진다. 극도의 남성 우월주의 국가로, 여성들은 거의 모든 권리를, 누군가는 이름마저 잃고 시녀나 하녀로, 또는 누군가의 부인으로서만 살아가는 나라. 그런 시대상을 배경으로, 『시녀 이야기』는 신분제에서 상대적으로 아래에 해당하는 '시녀' 계급 여성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삶, 평범했던 과거의 일상과의 괴리, 반항과 체념 사이의 갈등. 어딜 봐도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분위기에 읽는 데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증언들』은 시대상은 완전히 같지만, 상대적으로 지배 계층에 가까운 여성들인 '아주머니' 계급의 이야기를 다룬다. 『시녀 이야기』에서 체제의 부역자들로만 그려졌던 그 아주머니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그 자리에 있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이번 작품에서 그려진다.

그들 아주머니 역시 과거에는 대개 전문직으로서 일하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으니 이런 후진적인 체제에 대한 증오가 없을 리는 만무하고. 그러나 어쨌든 그 체제 안에서 일정 정도의 권한을 받은 자로서 체제를 지배하는 '남성'들에게는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골치아픈 상황. 그런 상황에서 아주머니들은 주위를 살펴가며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나은 쪽으로 이끌고자 노력한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는 말하지 않지만, 그런 지점에서 패배감이 크게 느껴졌던 전작보다는 조금 더 뒷이야기를 기대하며 읽을 수 있었다.

오랜만의 후속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둘이 합쳐 하나의 큰 작품이 아닐까 싶은 독서였다. 왜인지 전세계적으로 특히 약자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늘어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지금, 스스로 길리어드가 되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