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노랫소리를 들려줘
원작/각본/감독 요시우라 야스히로, 2021년 10월 (일본 개봉), 2022년 9월 (한국 개봉, 예정)
영화 감상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마련할까도 싶었지만, 영화 블루레이도 어쨌든 책장에 꽂아놓는 것이기에 그대로 책장 카테고리를 쓰기로 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요시우라 야스히로 감독의 최신작. 장편 애니메이션으로는 『거꾸로 된 파테마』 이후 8년만의 신작이다.
처음 이 감독의 작품을 접한 것은 『이브의 시간』(2008)이었다. AI를 탑재한 인간형 로봇 '안드로이드'가 실용화된 시기,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겉보기에 인간과 구분되지 않더라도 머리 위에 자신이 안드로이드임을 나타내는 표식을 보여야 하며, 안드로이드와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들을 멸칭으로 부르며 멀리하는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지 않는다'를 모토로 내건 카페를 둘러싼 이야기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베이스로 한 작품인데, 요즘 보기에는 약간 낡았다 싶은 설정이긴 하지만 제법 잘 만들어져 있다. 처음 공개된 이후로 거의 15년 된 작품이지만, 일본 서브컬처 작품 중에서 인공지능에 대해 이만한 수준의 고찰이 이루어진 작품 자체가 많지 않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감독 본인이 자신있어 하는 인공지능물을 다시 한 번 스크린으로 가져왔다. 인공지능이 실용화된 도시,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간형 로봇 '시온'이 고등학교에 전학을 오면서 발생하는 일을 그린다. 겉보기에는 인간과 다르지 않은데,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보면 뭔가 나사 하나가 빠진 듯도 하다. 이 로봇, 원만한 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을까.
...하고 소개하면 겉보기에는 고등학생들의 청춘 군상극에 뮤지컬을 합한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 생각보다 많은 것을 숨기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과거와 소망, 어른들의 이해관계, 인공지능의 사연 등 많은 것이 도시의 설정과 맞물려 새로운 방향으로 흘러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음악, 영상미 (특히 뮤지컬 장면) 모두 아주 잘 만들어져 있다.
국내 개봉 전이라 스포일러를 얘기할 수는 없으니 작품 소개를 더 할 수는 없고,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인공지능에 자아 또는 감정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인간의 감정 역시 아직 규명되지 않았을 뿐 여러 물질들의 작용에 의해 프로그래밍된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감독이 최근 이벤트에서 말한 적이 있다(기억에 의존한 것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큰 방향은 맞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닮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 봤더니 (말은 좀 이상하지만) 인간이 인공지능에 가까워지고 있더라 하는 견해다. 이 맥락에서 『이브의 시간』과 이번 작품은 모두 통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그저 고민 중) 인공지능에 자아나 감정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정의조차도 불분명한 고민보다는 한층 진일보한 관점이자 새롭고 실질적인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는, 일리 있는 견해가 아닐까 싶다.
사족이지만, 전작도 그렇고 이번에도 화면에 정보량이 많다. 버스 안의 전광판, 길가의 표지판 등등 그냥 배경으로 보일 법한 곳들에도 세계관을 소개하는 자잘한 정보가 숨어 있다. 물론 지나친다고 해서 스토리를 못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작품을 더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올해의 영화로 꼽는 것은 물론이고, 과장 약간 더 보태서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 중에서는 올 타임 베스트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다. 부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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