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책장/감상

『스노볼 드라이브』 감상

2021. 10. 30. 17:11

스노볼 드라이브

조예은 지음, 민음사, 2021년 2월

 

하나. 눈은 지금껏 지구상에서 발견되지 않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따지자면 광물, 모래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유백색을 띠고, 간혹 완전히 투명하거나 백색인 것도 있다. 빛과 각도에 따라 여러 빛깔로 빛나는데, 그 모양과 크기는 눈 결정체를 닮았지만 눈처럼 녹아 사라지지는 않는다. 처리를 위해서는 소각 혹은 매립밖에 답이 없으나 그로 인해 어떤 피해가 발생할지는 미지수다. 그것이 어디서 왜 떨어졌는지 역시 알 수 없다.

 

어느 날 녹지 않는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피부에 닿으면 발진을 일으키고 태우지 않으면 사라지지도 않는 이 눈을 치우기 위해 주인공이 살던 도시가 '특수 폐기물 매립 지역'으로 정해지고 소각 센터가 설립된다. 그런 와중, 주인공의 이모가 스노볼 하나만을 남기고 실종된다.

디스토피아 SF로밖에 생각할 수 없는 줄거리인지라 그런 것을 기대하고 구입했고, 디스토피아물을 이어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지구 끝의 온실』을 읽은 김에 연달아 읽게 되었다. 저 눈은 왜 내리는 것이며, '태운다'고 하면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려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시작부터 깨는 작품이었다.

세계가 변화하는 시점을 그리지만 작품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두 주인공 사이의 내-외적 갈등은 마무리되지만, 작품 속 주요 사건이나 그 현실에 대해 진전이나 해결이라고 부를 만한 내용이 이 작품 안에는 없다.

물론 반드시 세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거시적으로 그려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시점에 개인에 집중하는 서사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에서 세계의 단면이나 작품의 메시지가 더 잘 보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것은 애매한 포지셔닝이다. 변해가는 세계에 대한 설명이 중간중간 나오기는 하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로 한정하기에는 애매하게 구체적이고, 그런데 그걸 또 SF로서 충분하다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SF가 좁은 장르가 아니라는 비유 중 하나로 흔히 '불만 피우면 SF'라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SF에 포함될 수는 있겠지만 좋은 SF라고는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장르물보다는 순문학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읽었다면 이 작품을 조금 더 재밌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황금가지가 아니라 민음사에서 나온 시점에서 예상해야 했나 싶기도 하다.)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남는, 약간 아쉬운 독서였다.